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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랩] 요리
2004년 10월 4일자 dailyzoom 에서 시린눈의 글 발췌.



그런 날이면 나는 슬슬슬 길 건너편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으로 향한다. 그리고 장을 본다. 고기, 생선, 아스파라거스, 양파, 피망, 샐러리...   낯선 이름의 재료들을 꾸역꾸역 사 가지고서, 돌아오는 길에는 비디오 가게에 들러 최신 비디오를 한편 빌려 가지고서. 그리고 돌아와 앞치마를 입는다. 정성껏 양파 껍질을 벗기고, 야채들을 썰고 다지고 끓이고. 1인분의 그 요리는 정말 요리다. 요리책을 보고서 만드는 요리. 요리책의 설명에 의하면, 가보지 못한 먼 나라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진다는, 이태리의 유명 레스토랑의 정찬이라는, 프랑스 남부에서 먹기 시작한 소스라는, 그런 요리들.
때로는 열심히 파스타를 삶기도 하고, 온갖 호화 찬란한 재료들을 넣은 라면을 끓이기도 하고. 삶아 다지고 속을 채워 다시 튀겨내야 하는 그런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부엌이라 하기에는 미안한 현관 옆의 작은 공간, 1구의 가스레인지와 냄비 두개만으로 나는 별별 요리를 다 만들어보곤 했다. 요리책에는 그런것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리고 비디오 영화를 틀어놓고, 그 요리를 먹는다. 그럼 천천히 하루가 가고, 저녁이 온다.

그럭저럭 얼떨결에 나의 취미는 요리가 되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에 그보다 괜찮은 취미생활은 찾기 어려웠으니까. 어차피 먹는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고, 게다가 적당히 운동도 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만족감과, 그것을 먹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데다,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말하자면 생산적인 취미라고나 할까.
싱글인 가수 이현우가 요리책을 출간했을 때, 나는 좀 놀랐다. 오랫동안 혼자 살고 있다가 그가 '요리가 취미'라고 말할 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의 아내를 위해 음식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 도와줄 애처가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온 그 사람의 고독을 보게 된 것이다. 뭐, 꼭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그저, 시간을 보내며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요리,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 그 마음 속을 살짝 엿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누구나, 고독을 견디는 나름의 방법이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개와 대화를 하고, 누군가는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밤마다 나이트클럽으로 향하는 것이다. 뭐, 뭐든지 나쁠 건 ㅇ벗다. 고독을 즐기던지, 이기던지, 씹거나 풍선을 불던지,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법들이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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