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geniusspermbank.com/ 에서 발췌)
185cm. 77kg. 코카서스 인종(3/4영국계, 1/4스코틀랜드계).
검은머리. 초록눈. 흰피부.
중견 소프트웨어 회사의 부사장이며 연구원.
10개의 특허 소유.
일류 공대 졸업. 대학시절 올A의 평균 성적.
고등학교 시절 체스 챔피언.
학업, 스포츠 관련 다수의 수상 경력.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조깅과 워킹등의 운동을 하고 있음.
‘애인구함’란에서나 봄직한 자신에 대한 소개글이다.
하지만 이것은 ‘애인구함’란이 아닌 정자은행 홈페이지에 올라온 정자 기증자에 대한 소개글이다.
Genius Sperm Bank, 일명 천재들의 정자 은행이라는 이 회사에서는 용모나, 인종뿐만 아니라 유전적인 내력, 삶의 업적등 전반적인 면을 평가해서 뛰어난 사람의 정자만 기증받고, 그래서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건강한 아기만 선택적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한다. 한사람의 일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조사한다. 본인의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직계가족의 학력이나 건강상태, 사회적 지위까지도...
어제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이것과 관련된 방송을 보았는데, 미국에서는 1년에 6만명 이상이 정자은행을 통해 태어난다고 한다. 남의 정자를 받는다면 이왕이면 우수한 정자를 받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것만 찾다보면, 열등한 것은 점점 도퇴되어 가는것인가.
남편이 불임으로 인해 세명의 아이를 천재정자은행을 통해 낳은 한 미국인 여성은, 아이들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나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렇다할 두드러진 천재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머리 좋고, 혈통 좋으니 아이도 당연할 거란 믿음이다.
어느 날 그녀는 아이들의 아빠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기초자료를 입수해 아빠를 찾는 작업에 들어간다. 엄연히 정자 기증자가 비밀로 보호되고 있는데도, 그녀는 법의학연구소까지 동원해 결국 딸 아이의 정자 기증자를 찾아낸다. 그는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를 다니며, 건강하고 매력적인 남성이었다. 그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이에게 아빠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먼길을 떠나 결국 그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그는 정자은행을 통해 19명의 아이들을 낳았고(본인은 모르지만), 본인 또한 여자친구들을 통해 4명의 아이를 낳아서 이미 아빠가 된 사람이었다.
정자은행 아이와 아빠의 서먹서먹한 만남. 그리고, 아빠의 보호 아래 있는 자녀들과, 같은 아빠를 가졌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정자은행 아이의 만남. 부녀이지만 부녀일수 없고, 형제이지만 형제일 수 없는 관계의 어색한 만남 이었다.
아이는 아빠의 존재를 알고 애틋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지만, 그는 그저 무덤덤하다. 그리고 차갑게 떠나버린다.
아빠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난 그 수많은 아이들이 참으로 가엾게 느껴진다.
그리고 같은 아버지의 정자로 태어난, 남매지간 일지도 모를 사람들과 엮이게 될까봐도 겁이 난다.
무엇보다도, 생식능력이 없어 결국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 아버지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로 우울하다.
이게 과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일까.
|
|
